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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321분 읽기 • 👀 1

왜 아무도 첫 번째 돌을 던지지 못했을까 — 책임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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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사람들 앞에 끌려왔다.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돌을 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러자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했다.

사람들은 하나둘 돌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성경의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왜 아무도 첫 번째 돌을 던지지 못했을까?

왜 아무도 첫 번째 돌을 던지지 못했을까 — 책임의 본질 이미지 1

첫 번째 돌은 무겁다

내가 그 군중 속에 있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미 누군가 돌을 던지고 있고, 주변 사람들도 함께 돌을 던지고 있다면 나 역시 따라 던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웠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저 사람이 먼저 던졌잖아요.”

“다들 던지길래 저도 던졌습니다.”

그런데 내가 첫 번째 돌을 던져야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순간 질문이 생긴다.

내 판단이 정말 맞는가?

나는 이 행동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과 내가 판단을 시작하는 것은 다르다.

첫 번째 행동을 하는 순간부터 나는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판단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판단에는 책임이 따라온다.

책임이라는 말에는 원래 ‘답한다’는 뜻이 있다

영어로 책임은 responsibility다.

가끔 이를 response + ability, 즉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의미를 생각하기에는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실제 어원은 조금 다르다.

Responsibility의 뿌리는 라틴어 respondere에서 이어진다.

‘응답하다’, ‘답하다’, ‘약속에 답하다’는 의미다.

영어의 responsible에도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answerable, 즉 답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책임은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 판단과 행동의 결과에 대해 내가 답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결과가 예상과 달랐다면 무엇을 놓쳤는가.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책임은 결국 이 질문들 앞에서 도망가지 않는 것이다.

책임은 리더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책임이라는 말을 하면 대표나 임원, 팀장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권한이 클수록 책임도 커져야 한다.

하지만 책임은 리더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발자가 하나의 기술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QA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면 말해야 한다.

고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내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었다면 그 의견 역시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판단하는 순간 크고 작은 책임이 생긴다.

직책이 책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권한과 판단이 책임의 크기를 결정한다.

사람이 많아지면 책임은 오히려 흐려질 수 있다

흥미롭게도 사람이 많다고 책임감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심리학에는 책임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1968년 심리학자 John Darley와 Bibb Latané의 연구는 긴급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개인이 느끼는 개입의 책임이 약해질 수 있다는 현상을 다뤘다.

쉽게 말하면 이런 생각이다.

“누군가 하겠지.”

“윗사람이 결정하겠지.”

“저 팀에서 확인했겠지.”

“다들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조직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누가 답해야 하는가’가 흐려질 수 있다.

첫 번째 돌을 던지는 사람은 분명하다.

하지만 백 명이 함께 돌을 던지고 나면 각자는 자신의 돌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쉽게 잊는다.

책임지라고 하기 전에 책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조직에서 사람들에게 무작정 “책임감을 가져라”라고 말한다고 책임지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책임을 요구하려면 책임질 수 있는 조건도 필요하다.

1. 판단할 수 있는 정보

2. 결정할 수 있는 권한

3. 판단할 수 있는 역량

정보도 주지 않고,

권한도 주지 않고,

배울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결과는 네가 책임져.”

라고 한다면 그것은 책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가까울 수 있다.

책임지는 사람이 많은 조직을 원한다면 사람들에게 판단할 수 있는 조건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하나가 더 필요하다.

실패한 뒤에도 다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다.

한 번 실패하면 끝나는 조직에서는 아무도 첫 번째 돌을 들지 않는다

판단한다는 것은 틀릴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도 모든 판단을 맞힐 수는 없다.

그런데 한 번의 실패로 누군가가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점점 판단하지 않게 된다.

새로운 시도를 피한다.

상급자에게 결정을 올린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보다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증거를 먼저 찾는다.

책임을 강하게 요구할수록 오히려 책임지는 사람이 줄어드는 역설이 생길 수도 있다.

Harvard Business School의 Amy Edmondson이 연구해 온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도 이 지점과 연결된다.

심리적 안전감이 있다는 것은 실수해도 아무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질문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거나, 문제와 실수를 말했을 때 모욕당하거나 처벌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숨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가깝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왜 실패했는지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판단을 더 잘할 수 있다.

모든 실패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은 필요하다.

실패했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규칙을 반복해서 어기거나, 준비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내린 결정까지 모두 ‘도전’이라고 포장할 수는 없다.

Edmondson 역시 실패를 모두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부주의나 기본적인 실수에서 나온 실패와, 새로운 영역에서 충분히 생각하고 시도했지만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 지능적인 실패(Intelligent Failure)를 구분한다.

좋은 조직은 실패를 무조건 용서하는 곳이 아니다.

어떤 판단을 했고, 왜 실패했으며, 무엇을 배웠는지를 묻는 곳에 가깝다.

책임자를 찾는 조직과 책임지는 사람이 많은 조직은 다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누구 잘못이야?”

라고 묻는 조직이 있다.

반대로

“왜 이런 판단이 나왔고, 다음에는 무엇을 바꿔야 하지?”

라고 묻는 조직도 있다.

둘 다 책임을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전자는 책임자를 찾는 데 집중하고, 후자는 책임지는 과정을 만든다.

물론 잘못한 사람에게 필요한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

하지만 책임이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끝나서는 조직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제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가 놓친 것은 이것이고,
다음에는 이렇게 바꾸겠습니다.”

이것이 responsibility의 어원에 들어 있는 ‘답한다’는 의미와도 닿아 있다.

다시 첫 번째 돌을 생각한다

다시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수많은 사람이 돌을 들고 있다.

그런데 질문 하나가 던져진다.

“네가 먼저 던질 수 있는가?”

그 질문을 받는 순간 군중 속에 숨어 있던 개인이 다시 나타난다.

내가 판단해야 한다.

내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내가 답해야 한다.

아마 책임도 비슷하지 않을까.

리더라서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판단했기 때문에 책임이 생긴다.

그리고 조직이 사람들에게 책임을 원한다면 “책임져”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판단할 능력을 키워주고,

그에 맞는 권한을 주고,

합리적인 판단이 실패했을 때 다시 배울 기회도 줘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군중 뒤에 숨지 않고 앞으로 나온다.

책임은 모든 것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과 그 결과에 끝까지 답하는 태도다.

참고 자료

Bible Gateway — John 8

Online Etymology Dictionary — Responsibility

Darley & Latané — Bystander Intervention in Emergencies: Diffusion of Responsibility

Amy Edmondson — Managing the Risk of Learning: Psychological Safety in Work Teams

Harvard Business School — Intelligent Fail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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