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주면 숲을 만드는 사람 —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의 태도 ④
팀장이 세 사람에게 같은 일을 맡겼다고 해보자.
“우리 서비스에 AI 기능을 적용할 수 있을지 한번 검토해주세요.”
요구사항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어디까지 조사해야 하는지,
어떤 형태로 보고해야 하는지,
언제 실제로 개발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첫 번째 사람은 생각한다.
“뭘 어떻게 검토하라는 거지?”
그리고 묻는다.
“요구사항 좀 더 구체적으로 주실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사람은 시장에 나온 서비스를 조사하고 장단점을 정리해 보고한다.
충분히 맡은 일을 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경쟁 서비스를 조사하고,
우리 서비스에서 적용할 수 있는 기능을 세 가지로 나누고,
그중 하나는 작은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어본다.
팀원 몇 명에게 보여주고 반응도 물어본다.
그리고 보고한다.
“세 가지 방향이 가능해 보입니다. 이 중 두 번째가 가장 현실적이고, 간단하게 만들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팀장은 분명 같은 씨앗을 세 사람에게 줬다.
그런데 한 사람은 그 씨앗에서 꽃을 만들어왔다.
나는 회사에서 이런 사람들을 종종 봤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다음에 더 큰 일이 생겼을 때 또 그 사람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람은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회사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이야기하면 조금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무조건 회사 말에 따르라는 건가?”
“힘들어도 웃으라는 건가?”
“안 되는 것도 된다고 말해야 하나?”
나는 그런 긍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정이 불가능한데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긍정이 아니라 잘못된 판단일 수 있다.
문제가 있는데 괜찮은 척하는 것도 좋은 태도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람은 현실을 낙관적으로 왜곡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보면서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문제가 없는 척하지 않는다.
문제를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에서 멈추지 않는다.
1편에서 이야기했던 투덜이는 문제를 발견한 자리에서 멈췄다.
2편에서 우리는 외부 변수를 없애기보다 받아들이고 관리하는 법을 이야기했다.
3편에서는 불평 뒤에
문제 → 영향 → 대안 → 요청
이라는 다음 문장을 붙여봤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가 있다.
주어진 것보다 조금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씨앗을 받았을 때 무엇을 보는가
같은 일을 받아도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르다.
누군가는 부족한 조건부터 본다.
“시간이 너무 짧은데요.”
“인력이 부족합니다.”
“자료가 없어요.”
“요구사항이 너무 애매합니다.”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실제로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부족한 것을 확인한 뒤 다른 질문을 한다.
“그럼 지금 가진 것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지?”
씨앗 하나를 받았다고 해보자.
누군가는 말한다.
“화분도 없는데요.”
“흙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물을 누가 줄 건데요?”
그런데 누군가는 일단 심는다.
좋은 위치를 찾고,
물을 주고,
햇빛을 조절한다.
그리고 작은 꽃 하나를 피운다.
나는 이 차이가 단순한 성격 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다.
긍정적인 사람은 좋은 조건만 기다리지 않는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확인하고,
그 안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결과를 찾는다.
작은 일을 크게 만드는 사람
회사에서는 처음부터 큰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신입사원에게 중요한 사업 전체를 맡기지 않는다.
처음에는 작은 일부터 준다.
자료를 하나 조사해보라고 하고,
고객 미팅에 같이 들어가게 하고,
작은 기능 하나를 맡긴다.
일종의 씨앗이다.
그런데 그 작은 일을 어떻게 가져오는지를 사람들이 본다.
“요청하신 자료입니다.”
로 끝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말한다.
“요청하신 자료를 조사하면서 세 가지 패턴이 보여서 같이 정리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간다.
“팀에서 다음에도 사용할 것 같아서 템플릿으로 만들어뒀습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신뢰가 생긴다.
‘이 사람에게 하나를 주면 하나 이상이 돌아오는구나.’
그러면 다음에는 조금 더 큰 일을 맡긴다.
처음에는 자료 하나였다.
다음에는 작은 프로젝트가 된다.
그다음에는 고객을 맡긴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람을 맡기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단순히 운처럼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운도 있다.
하지만 조직에서는 작은 기회를 어떻게 다뤘는지가 다음 기회의 크기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기회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기회를 크게 만들어낸 사람에게 다시 주어진다.
꽃을 만드는 것과 숲을 만드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단계가 더 있다.
혼자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애매한 일을 줘도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 사람은 씨앗으로 꽃을 만들 수 있다.
훌륭하다.
하지만 조직에서는 그다음 능력이 필요하다.
꽃으로 숲을 만드는 것.
자신만 알고 있는 방법을 문서로 남긴다.
후배에게 알려준다.
반복되는 업무라면 템플릿을 만든다.
사람마다 다르게 처리하던 일을 프로세스로 만든다.
자신의 실수를 다른 사람이 반복하지 않도록 경험을 공유한다.
그러면 내가 만들어낸 꽃에서 또 다른 씨앗이 나온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 씨앗을 심는다.
한 사람의 성과가 팀의 능력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 사이의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씨앗을 꽃으로 만드는 것은 개인의 성장이고,
꽃을 숲으로 만드는 것은 조직의 성장이다.
진짜 긍정적인 사람은 주변 사람의 가능성도 키운다
더 좋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서만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후배가 실수했을 때
“그것도 못 해?”
라고 끝내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같이 보자.”
라고 말한다.
팀원이 아이디어를 냈을 때
“그거 예전에 해봤는데 안 돼.”
라고 바로 잘라버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왜 안 됐지? 지금은 달라진 것이 있을까?”
라고 묻는다.
누군가 작은 가능성을 가져왔을 때
그 가능성을 꺼뜨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키워준다.
그래서 좋은 긍정성에는 묘한 전염성이 있다.
옆에 있는 사람도 한번 해보고 싶어진다.
말하기가 조금 편해진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사람이 팀에 한 명 있으면 단순히 그 사람의 생산성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행동까지 달라진다.
숲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씨앗을 심을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한 가지 오해는 피해야 한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이
모든 일을 다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씨앗이라고 다 좋은 씨앗은 아니다.
심을 가치가 없는 것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일도 있다.
그래서 긍정적인 태도에도 판단이 필요하다.
“이건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유다.
“귀찮아서요.”
가 아니라,
“지금 이 일을 하면 더 중요한 A 프로젝트가 늦어집니다. 현재는 A를 먼저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긍정적인 사람은 무조건 YES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다.
가능성을 찾되, 무엇에 에너지를 써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다.
AI 시대에는 이것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1편에서 나는 AI 시대에 투덜이는 빠르게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반대편에서도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AI가 문서를 만들고,
자료를 조사하고,
코드를 작성하고,
아이디어까지 제안할 수 있는 시대에
사람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단순히 결과물을 하나 더 만드는 능력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매한 상황에서 방향을 찾고,
작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확산시키는 능력.
즉,
하나의 씨앗에서 어디까지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가.
AI가 씨앗을 꽃으로 만드는 것을 점점 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쩌면
그 꽃을 어디에 심을지 결정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숲을 만드는 역할을 더 많이 해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회사가 더 큰 씨앗을 주는 사람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왜 저 사람한테만 좋은 기회가 가죠?”
“왜 중요한 프로젝트는 늘 같은 사람이 맡죠?”
때로는 조직의 불공정 때문일 수도 있다.
정치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모든 기회가 실력과 태도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받은 작은 씨앗으로 무엇을 만들었을까?
업무 하나를 받으면 딱 그만큼만 돌려줬는가.
문제가 생기면 이유부터 설명했는가.
아니면 주어진 것 안에서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보려고 했는가.
그리고 내가 만든 결과를 나만의 성과로 남겼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는가.
나는 회사에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할 때 결국 이런 사람이 떠오른다.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항상 웃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사람도 아니다.
현실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는 사람.
작은 것을 받아 조금 더 크게 만들고,
자신이 얻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결국 개인의 성과를 팀의 성장으로 바꾸는 사람.
같은 씨앗을 받아도 누군가는 흙이 나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 씨앗에서 꽃을 피운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꽃에서 다시 씨앗을 얻어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하나씩 더 심으면서
결국 숲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나는 회사가 결국 그런 사람에게
더 큰 씨앗을 맡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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